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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2 15:59

한반도의 가락(駕洛) 문화는 최소 수만 년 간 지속됐다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金銅半跏思惟像>

조선의 후예또한 한반도로 귀향 후 가락문화 속에 살았던 것이다. 삼한의 문화에서 동질성이 있는 것은 가락문화와 관련이 깊다. 삼한의 뿌리적 문화도 가락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출발한 삼한은 대륙의 깊은 곳에서 그 터전을 마련했으며, 기원후 고대 국가급으로 발돋움했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이다.  

 

모수국을 비롯해 삼한의 여러 부족국가가 나온것은 그 터전이 한반도가 아니다. 대륙의 넓은 대지에서 태동했다. 

수십만 년 전 한반도에서는 작은 변화가 일었다. 원시적 부족사회를 일구며 살았던 원주민들이 농경사회를 일구면서 그 규모가 점점 거대화되었기 때문이다. 규모의 거대화로 이 사회는 중앙집권식의 통치기반이 절대로 필요했다.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대부분 하나 둘 체계를 완비했다. 과거시험 또한 생겨났으며 학문적 진보를 이뤘다. 한반도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문명의 속도가 매우 빨랐다. 다른 지역은 대부분 원시 부족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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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예수~정약용)의 문화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가락문화이다.>

 

한반도는 인류 문명의 뿌리적 기반을 이룬다. 조선의 생활과 문화 역시 가락문화이다. 지금의 영어와 한자도 한국어가 뿌리 언어이다. 동일 음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그 뿌리적 토양이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외는 조선(예수~정약용)의 산하였지만 대부분 원시 부족사회였다. 기독교에서 보이는 시온지는 수원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의 지식인들은 그 사실을 모르겠지만 수만 년 전 가락 속 학문의 진보는 지금보다 최소 수만 년 앞선 것으로 지금보다 월등한 학문적 진보를 이뤘다. 철학적 학문 또한 진보시켰으며 인류의 뿌리적 문명을 이뤘다. 지금의 인류가 과거 급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정도로 그 학문 또한 깊었으며 과거 시험을 통해 인재를 양성한 것 또한 수만 년 앞섰다. 선조들의 그러한 학문적 깊이는 유서 깊은 유물과 유산을 남겼다. 그들의 지식은 이 시대 사는 손들이 알기에는 버겁다. 왜냐하면 그들이 남긴 유산의 해석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역사 또한 그러한 사실을 증명한다. 지금의 지식으로는 제대로 그 해석을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금 배우는 역사 또한 큰 그림부터 해석을 잘못 한 관계로 짜집기 식의 엉망진창 한 역사서가 되었던 것이다. 선대는 많은 지식적 유산을 남겼다. 그러한 것은 그 수준의 학문적 고찰이 있어야만 해석 가능하다. 자연의 위치와 인간의 도, 그리고 인과사, 그리고 지금적 문명권에서도 나름대로의 고찰이 있었다. 그들이 남긴 유산도 많으며 이 시대 꼭 필요한 지식을 산하에 남겨두웠다. 

그것은 학문적 고찰과 천재성을 지녀야 해석 가능하다. 지금의 역사가 날조의 역사가 된 것은 여러 학문적 고찰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수원 칠보산의 보물중 산삼, 맷돌, 잣나무, 황금 수탉, 호랑이, 절, 장사, 금 등 이 있으며 이 중 산삼과 맷돌은 인류의 뿌리적 문명은 가락문화에 있다는 걸 알린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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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문화는 8만년전에 이미 왕권을 수립했다 

 

한반도의 문화는 가락문화가 주를 이룬다. 지금의 조선(예수~정약용)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가락문화이다. 조선이 가락문화 풍으로 집대성했던 것이다. 지명 속엔 조선의 지식이 총망라되어 있다. 조선의 역사는 영원에 가까운 초월적 세계라는 것도 알렸던 것이다. 가락문화가 오래되었긴 했지만 그보다 더 오래된 인류사들이 존재한다고 자손들에게 알렸던 것이다.  

한반도의 가락문화는 이미 8만 년 전에 왕권을 수립했다. 그 이전에도 가락문화는 십만 년을 넘을 정도로 장구하다. 지금의 인류 문화의 뿌리 문화이며 조선 외는 별개라고 적어 놓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음식과 전통문화 유교정신 등은 가락문화에 속한다. 오래된 전통 양식과 기념일도 그 뿌리가 한반도이다. 전통적 가락문화는 20여만 년에 이를 정도로 그 시대가 길었다. 

 

과거의 먼 인류의 역사로 돌이켜 본다면, 지금의 인류에 있어 가락문화는 뿌리적 문명에 속한다. 지금의 인류의 모습을 갖춘 것은 오래된 가락문화의 옛 문명적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다만, 수억 년 전 또는 수십억 년 전의 인류는 지금적 인류와 걸었던 길이 다르다. 20만 년간 가락문명을 일궜던 그들 또한 독립적인 세계에 이주한 상태다. 지금의 인류는 태반이 뿌리적 기반인 1,2000년경 중국의 삼국지 시대를 떠올린다면 그들의 지적 문명은 지금의 인류보다 최소 수만 년 앞서 있다고 평가해야 한다. 그들의 고유한 유산과 유물을 받아 지금적 문명을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가락문화는 가락왕조로 이미 8만 년 전에 중앙 집권식 왕권을 확립했었다. 그 자료와 역사로서 수원화성을 짓고 집대성했던 것이다. 그들은 과거 지구에서 이주, 인근 항성계에 거주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의 인류와 마찬가지로 그들에 있어서도 문명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항이었다. 경험 또한 필요하며 그들은 한 발 앞서 월계우주 자유영역권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주 또한 그 이후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그들의 항성계는 여러 개로 나눠져 있으며 범세력의 일부인 천공성(천광년 천개의 행성) 세력과도 별개로 보아야 한다.  

 

지금의 그들은 월계 자유영역권에 도달해 있다. 지금의 인류보다 최소 수만년 이상 앞서 있으며 문명 또한 지구에 못지않게 발전한 상태이다. 무엇보다 그들의 지적 능력은 지구보다 월등하다. 철학적 고찰도 투철하다. 정조행차의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조선과, 가락이 함께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그 중심에 범세력과 문명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 신계와 요, 안라국을 거쳐 신의 성지에서 함께했음을 자손들에게 알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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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주환경은 지금과 달랐다.
20만 년의 주인공 가락문명은 우주 진출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자체적인 문명권으로 지금의 현대 문명까지 앞섰었다. 그들은 남극대륙까지 진출했으며, 우주 진출을 위한 전진기지는 남해 지역이었다. 과거의 잔상이 남는 것은 그들의 문명에 속한다. 그들은 수만 년 전 이미 활로를 열었으며 진출해 나갔다. 유물이 남지 않는 것은 철저하게 보안 속에 진행됐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당시 특수지역이었다. 조선을 비롯 그 세력에 있어 감춰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은 후대 인류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 서이다. 그것은 폭력적인 인류라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들이 현대까지 유지됐다면 평화를 유지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학문의 진보에 있어 많이 뒤처지는 후대 인류에게는 폭력적인 상황으로 인해 한반도가 가루가 될 상황까지 내다본 것이기도 했다.  

 

수만 년 전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KBS방송국이 있었다. 그것은 가락문명이었다. 그들 또한 앞으로 신이 강림한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으며, 그와 함께 했다. 또한 그들이 발사한 인공위성도 많았다. 과거는 지금보다 낙후했을 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우주로 진출까지 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남겨진 여러 유산과 풍토는 가락문화이다. 그 전통성을 이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예수~정약용)의 학문 또한 많은 것을 이었다. 대륙에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는 별개의 역사이다. 그 역사서를 훔친 역사밖에 안 되는 것이다. 고유의 맥은 한반도 과거의 역사이다. 그러한 것을 무시한다면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과 같을 것이다.  

또한 지금의 한글은 그보다 더 오래된 문자에 해당된다. 언어는 오래된 관습과 풍토로 만들어졌다.

구지가, 가락국기는 8~9만 년 전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과거의 역사서 중의 구지가, 가락국기는 이 시대의 산물이 아니다. 최초의 왕권을 수립한 8만 년 이전과 9만 년 전의 전설적 내용들을 집대성한 것이 구지가, 가락국기이다. 이전의 상황은 지금 배우는 역사서와 동질 하며 유사하다. 가락국기에서는 가락권 문화와 갈라서는 시점을 김수로왕 때로 본 것이다. 그 이전과 이후로 명백히 나눴음을 알 수 있다. 동시대로 비추어 본다면 맞지 않은 내용이 많을 것이다.  

 

가락문명은 지금의 현대문명과 비추어봐도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았다. 항성계간 이주를 성공할 정도로 고도의 문명을 달성했다. 문명 또한 한반도 자체적으로 이 룰정도로 고유의 문화를 유지했다. 지구의 태생적 문명권에서 순수하게 발전에 성공한 첫 번째 사례인 것이다. 전통문화에 있어서도 강화도 참성단 문화 또한 가락문화에서 비롯됐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풍토는 그 가락문화를 받아들여 한반도(신의성지)를 관리했던 것이다.  

 

한반도에서 출품된 문물과 유적들은 그러한 사실들을 새겨 놓았다고 보아야 한다. 과거 수천 년으로 비추어 본다면 오류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그 이전시대까지 통틀어 해석해야 한다. 또한 조선과의 관계 그리고 그 조선의 뿌리도 한반도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초창기는 남해 앞바다 일대였다. 지금의 목섬(시산) 앞은 그들의 첫 번째 도시가 있었다. 그 시대를 그리워해 세계의 지도를 과거의 지구와 유사하게 했던 것이다. 그것도 손수 지형까지 만들어 갔다. 조선은 영원에 이를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또한 초월적 집단세력이다. 특히 지구는 그들의 뿌리적 고향으로 그들에 의해 여러 역사서를 남겼졌던 것이다.  

 

지금의 한반도인들은 그러한 가락문화권에 있는 손들로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잊어서는 안 된다. 성공했던 앞의 선대 조상은 가락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주 진출을 성공한 첫 번째 지구 토박이들이기 하다. 그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며 두 번째로 성공사례를 이루라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한반도의 지형과 유적은 그러한 사실들에 대해서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지구의 인류는 다양한 외계적 환경에서 지구로 들어온 세력이기도 하다. 문명의 동질성으로 같은 종으로 알고 있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지구에 한정된 환경 탓으로 보아야 한다. 과거 그들의 고유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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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문명을 일군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 이전에 이미 가락문명은 고도의 문명을 달성했다. 그들은 그 이전시대 수만 년간 우주 진출을 노렸으며 이주에 성공했다. 인근항성계에서 그러한 것들이 비친 것은 그들의 문명이 있어서다. 범은 그 가락문명권에서도 '논장각하직'을 수행하며 그들의 지식적 진보에 도움을 주었다. 당시에도 범은 천재적 지능을 갖췄으며, 그들의 법관과 지식적 교수로서 임했다. 지금의 방송국 일부는 그 당시의 상표와 똑같으며 유사하다. 수만 년 전 방송국 이름 또한 KBS였다.  

그들의 문명을 남기지 않았던 것은 지금의 인류에 있어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 인류는 자체적으로 문명을 달성함과 동시에 학문적 진보 또한 이뤄야 할 문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와 비교하자면 유사한 점이 많다. 다만, 지금의 인류는 여러 우주적 태생으로 고작 수천 년간 인류적 길을 걸었을 뿐이다.  

 

가락문명은 수만 년 전 여러 항성계로 진출함은 물론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여러 지구형 행성을 다스리고 있었다. 지금의 현대 문명과 비추어 본다면 그들은 이미 우주로 나갈 수 있는 고도의 우주선 또한 개발을 완료한 상태였다. 여러 외계적 행성 또한 탐사를 이루었으며, 무엇보다 우주의 대 붕괴적 사실 또한 그들은 알고 있었다.  

 

풍토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시대의 모습이지만 사실 뿌리적 문화는 가락이다. 그들 또한 지금처럼 가락적 전통미를 내세우며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언어 또한 한국어와 유사하며 문자는 한글을 쓴다. 이주한 가락문명은 지금의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구조도 다를 뿐만 아니라, 체계도 다르다. 특히 전통과 현대 그리고 미래를 잇는 도시들의 특성이 강하다. 파별 문화도 지금의 인류와는 대조된다. 그들은 뿌리 깊게 파 문화를 일구며 여러 나라들을 다스리고 있다.  

 

그들이 앞으로 올 신과 그에 따른 지식을 한반도에 집대성했다. 조선뿐만이 아니다. 가락문명도 그들만의 노하우를 산하 깊은 곳에 새겨 놓았다. 우리의 지식적 눈으로는 그러한 것들을 해석하기 버겁다. 왜냐하면 그러한 부분들은 지금의 눈높이로는 해석이 어려운 위치이기 때문이다. 고착화된 지식 또한 그 안에 새겨진 것에 대해서 해석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해석은 영적인 눈으로 여러 가지 일과 연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중의 하나가 자연의 위치이다. 과거 이집트 등 고대 유적지의 문자를 해석하는 것보다 어렵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또한 지역의 문화와 유적 그리고 그들이 남겨진 문장들을 잘 대조해야 한다.  

 

특히 지구에 있어 이주와 관련된 일로 논장각하직은 물론 교수직, 깜장, 기자, 우주작전사령관(별20개)를 요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월계라는 외계세력과의 조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여러 가지 그에 맞춰 인류의 진보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우주 진출에 성공한 또 하나의 가락문명 

 

지금의 뿌리적 문명을 이룬 한반도인들은 첫 번째가 아니다. 수만 년에 걸쳐 학문적 깊이와 진보적 문명을 이룬 세력이 있었다. 그들의 문화 또한 지금의 한국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고도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진보적 문명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문명은 항성계간을 이주할 정도의 고도의 문명이었으며, 지금의 세계에 못지않은 다수의 행성을 거느린 거대 세력으로 성장했다. 문명은 성간 물류가 가능할 정도로 우주문명 또한 고도로 발달했다. 한반도에서의 과거의 잔상들은 그들의 생활과 문화였던 것이다. 

 

특히, 그들은 한반도와 일부 도서만으로 우주 진출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그러한 부분은 지금의 한반도인들에게는 다소 의아해 할 수 있다. 문명 또한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로 지금적 인류와는 차별성을 두고자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물과 유적 또한 그러한 것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 문화 속에서도 신의 손은 매우 중요하게 바라본 것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의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욕심으로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다. 또한 과거의 여러 세력과 마찰로서 지배하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 또한 들여다볼 수 있다.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있어 무시 못 하는 문제에 대해서 아직도 가늠하지도 못하며 자신의 그릇조차 분별 못하는 수준이라 평가해야 한다. 작은 것은 어떻게 해든 차지해 먹으려고 하는 것은 그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들은 평화적 공존과 협력 그리고 대를 위한 의도 없으며, 미래를 보는 눈도 달려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 질서에 무조건적인 편입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매우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모른다. 지금의 정세는 월계 식민령으로 자칫 그들의 그릇된 판단이 암울하고 힘든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숙지해야 한다. 또한 그들에 있어 아직 범세력에 편에 섰다고 보기 힘들다. 그 시간은 오랜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 지금의 인류는 경험도 없을 뿐 아니라 권력적 욕심으로 인류사에 크나큰 오점을 남기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선대 가락문명은 지금적 인류보다는 현명한 집단으로 고도의 정신적 문명을 창궐한 세력이기도 했다.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것은 그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대 가락문명과 현실을 비추어 보자면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인류에 있어 그들의 지식은 그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선대가 남긴 유물과 유산들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한반도에서 20만 년의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선대 조상은 그러한 가장 어려웠던 시기 순수 가락문명으로 인류의 터전을 이어 나갔다. 그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지구 어디서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약육강식 세계의 탑 위치에 있지 않았다. 가락문명은 그러한 짐승에 대해 방어의 벽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진보해 나갔다. 학문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우수했으며 그들만의 철학을 확고히 했다. 그러한 결과로 우주 진출까지 성공한 것이다. 순수 지구 토박이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러한 것들을 새겨 놓은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해석 못하는 이유는 그 시대보다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선대는 후대 손들에게 여러 가지를 남겨 놓았다. 유물 하나하나 정성 들여 자손들에게 고했던 것이다. 그들의 무언의 메시지들은 수없이 많다. 앞으로 자손들이 헤쳐 나가야 할 영역들을 남겨 두었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는 고유한 것으로 앞으로 자손들이 오랫동안 소중히 지켜 나가라 “고“ 말했던 것이다. 한반도의 고유한 유적에는 수없이 많은 메시지들이 담겨있다. 우리가 진정 소중히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소중한 전통을 잊는다면, 영원히 우리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이라고 ... 

한반도에서 출품되는 유적과 유물은 그러한 고귀한 내용을 품고 있다. 그래서 역사는 속이면 안 되는 것이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가락 문명으로 이은 그리고 성스러운 신의 성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8만 년 전에 중앙집권식 체계를 갖춘 것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신에 대해서도 상당히 진보를 이뤘다. 신에 대한 것들은 그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학문의 진보에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고찰 또한 상당히 깊었다. 그들은 우주적 문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인류에 있어서도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갔다. 후대 인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반도에는 그들이 남긴 지식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화성 이후의 환란은 수없이 많은  값진 유산들이 불에 타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의 역사는 그러한 것을 숨기기 위한 역사였던 것이다.  

 

한반도는 20만 년의 가락문명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던 조선의 역사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그 세월이 영원에 가까웠던 것이다. 신계 또한 수만에 달 할 정도로 그 숫자가 많았다. 한반도는 여러 일에 있어 특수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에서 출품되는 유물과 유산들은 그러한 정신을 담고 있다. 지금의 역사적 유물이 절대로 아니다. 오랜 전통과 문화를 계승한 유물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가락문명은 그 태동시기인 20만 년부터 8만 년 전에는 중앙집권 체계를 완성했다. 그리고 수백 년 후 우주 진출에 교도부를 세웠으며 하나 둘 성간 이주에 성공했다. 그들은 그 이후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며 지금은 월계자유영역에 그 터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곳에 또한 범의 성역이 있으며 거주지 또한 마련되어 있다.  

지금의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해석을 못하는 것은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지식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많은 분야에 있어서 인류는 학문적 진보를 이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8만 년 전에 중앙집권식 체계를 갖춘 것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신에 대해서도 상당히 진보를 이뤘다. 신에 대한 것들은 그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학문의 진보에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고찰 또한 상당히 깊었다. 그들은 우주적 문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인류에 있어서도 상당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갔다. 후대 인류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반도에는 그들이 남긴 지식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화성 이후의 환란은 수없이 많은  값진 유산들이 불에 타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의 역사는 그러한 것을 숨기기 위한 역사였던 것이다.  

 

한반도는 20만 년의 가락문명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던 조선의 역사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그 세월이 영원에 가까웠던 것이다. 신계 또한 수만에 달 할 정도로 그 숫자가 많았다. 한반도는 여러 일에 있어 특수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에서 출품되는 유물과 유산들은 그러한 정신을 담고 있다. 지금의 역사적 유물이 절대로 아니다. 오랜 전통과 문화를 계승한 유물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가락문명은 그 태동시기인 20만 년부터 8만 년 전에는 중앙집권 체계를 완성했다. 그리고 수백 년 후 우주 진출에 교도부를 세웠으며 하나 둘 성간 이주에 성공했다. 그들은 그 이후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며 지금은 월계자유영역에 그 터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곳에 또한 범의 성역이 있으며 거주지 또한 마련되어 있다.  

지금의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해석을 못하는 것은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지식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많은 분야에 있어서 인류는 학문적 진보를 이뤄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주정거장까지 건설한 가락문명 

 

가락문명은 인근 항성계의 지구형 행성을 발견할 정도의 문명을 달성했으며, 성간 이주에 성공했다. 그들은 궤도상에 우주 정거장까지 건설했으며 성간 이주를 위한 이주선도 건설 운영 했다. 인구수는 한반도와 인근 도서를 운영했지만 그렇다고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주 과학력을 높여 이주에 성공했던 것이다. 전통의 방식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동시대 전통의적 생활과 근대식 교육, 그리고 미래적 도시를 운영했다. 당시 인류는 원시적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고방식 또한 사냥과 채집생활에 그쳤다. 특수지역은 그들의 자연보호적인 관리 대상에 있었다.  

 

 

태양의 문제, 그들의 성간 이주를 앞당겼다 

 

수만 년의 기간은 그들에 있어 이주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인근의 지구형 행성을 발견하고 위치까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수만 년에 걸쳐 천문분야의 과학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 학문 또한 발전했다. 인간에 있어 병적인 요소들 또한 그들의 관심대상이었다. 한반도의 유산에는 그러한 내용들이 집약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사서에서 발견되는 내용 중의 상당 부분은 이주와 관련이 있다. 학문을 집대성했던 것이다. 앞으로 후대 인류가 살지도 모를 시대에 수만 년에 걸쳐 발견한 인류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볼 수 있게끔 정리했던 것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태양의 사멸지점이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태양은 우리가 알고 있는 45억 년 정도의 태양이 아니었다. 항성의 말기에 해당되는 100억 년이나 지났던 것이었다. 그러한 문제는 이주를 앞당겼다. 다만, 앞으로 남을 후대 인류에게는 과학력을 높인다 해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라는 점을 내비치기도 했다.  

 

앞으로 후대 인류는 거대한 우주적 역사에 마주 서게 될 것이라고 예시했다. 그들은 그러나 그 시대에는 매우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후대 인류에게 고했던 것이다. 그것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며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될 문제로 다가올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이다. 또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외계세력과의 조우가 반드시 있을 것으로 그들은 그러한 세계에서도 그가 안내하는 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 지금의 현대인들은 가락문명의 선대와 정신적 의식 수준은 최소 20만 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대인에 있어 의식 수준이 높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신적 수준은 미개할 정도로 다른 외계적 문명에 대한 이해도는 매우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며 다른 외계의 신과의 조우 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 미래의 불안한 요소이다. 이는 체계적으로 지식을 쌓을 필요성이 있으며 의식 또한 전통의 방식부터 배워나가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구의 인류는 현재 월계라는 외계세력권에 있으며 그들의 식민령이라는 점이다. 헤쳐 나가려면 우선은 자유영역권에서 정착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신에 대한 예우로서 그러한 질서를 익혀야 한다는 점이 앞으로 매우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봐야 한다. 

 

20만 년의 가락 문명은 한반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일본지역 또한 그들의 1파는 일본 문화 속에 살았다. 지금의 일본인들은 그들의 후손들이었던 것이다. 조선(예수~정약용)이 일본이 우호적 이였던 것은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만 년 전 수원지역에 있었던 논대는 그러한 일본어를 사용하는 손들도 많았다. 유학생활을 했던 것이다. 

 

과거 우주적 환경에서 돌이켜보면 멀지만, 지구의 토박이로는 처음 문명을 이룬 업적은 높이 살 만하다.. 그것은 부족함을 알고 학문적 깊이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한반도와 일본인들의 유전자에는 유교를 비롯해 그러한 것들이 잠재되어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하냐에 따라 미래가 매우 다르게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유교정신은 그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인류의 길은 언제라도 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러한 경험 속에 유교는 그들의 보호막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선대는 내다본 것이었다.


문명의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은 이곳은 신의 성지(자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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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크 (김홍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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