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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특별기획
  • "까마득한 과거 역사 속, 미래에서 온 자가 있었다."
  • 지구에서, 또는 다른 외계 행성에서 인류가 살았던 건 처음이 아니다. 지금의 산하에 새겨진 내용 중의 하나는 지금의 문명척도를 한참 넘어선다는 사실이다. 그중의 하나가 우주 관측분야이다. 과거의 문명은 초고도의 문명으로 거리 측정은 지금의 문명척도를 한참 넘어선다. 그 거리가 범의 인주거리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 사실을 이해 못 하겠지만, 지구의 지형은 선대의 고유한 유산으로 직접 그렸다는 사실이다. 달의 문양 또한 우연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대 조상들은 달의 문양까지 직접 그렸다. 그것은 문명적 척도가 지금보다 월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 또한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선대 조상들은 왜 그러한 것들을 표현했는지 궁금해 할 수 있다. 그 사실은 그 손이 태어나는 자손들 시대에 매우 중요한 문제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중의 하나가 우주적 대 붕괴이다. 또한 태양계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은 가까운 미래 태양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까지 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인류는 문명을 발달시킨 첫 인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인류의 문명은 과거에도 있었다. 화성(Mars) 또한 오랫동안 살았던 곳이다. 다만, 지구는 특수적인 상황으로 외계전쟁으로부터 수호하기 위한 전장적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 시대가 길었기에 그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선대 조상들은 그 인물에 대해서 꼭 확인하라고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그것은 특정 인물을 가리키며, 앞으로 그 손이 재림한다는 사실을 산하 곳곳에 새겨놓은 것이다. 그의 관상이 남아있는 이유는 과거에 그 손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의 성격과 생활 그리고 외모까지 반드시 숙지하라는 조상들의 명령은, 절대적으로 무시 못 하는 내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그는 미래에서 온 자였기 때문이다.   관련뉴스 신시(神市)는 홍산문명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수원 만석공원, 그리고 신시(神市) 까마득한 옛적에, 고려(KOREA)라는 나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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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특별기획
  •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의미는?
  • 민화에서 보이는 호랑이 담배 피우는 모습은 우주적 환경에서 어둠의 공포와 관련이 있다. 태초의 신이 담배를 피워야지만 어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범(範)의 흡연은 필연적으로 어둠의 공포를 잡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둠에 사로잡혀 먹히고 만다. 태초의 신은 어둠의 공포를 담배로 잡음으로서 인류가 살 수 있게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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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특별기획
  • 물질을 이루는 기본적인 원자의 변화
  • 원자(atom)는 물질을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구성단위로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원소의 화학적 성질을 갖는 최소 단위이다. 모든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는 기본 구조로서 태양은 물론 모든 행성의 기본적 구조로 이어왔다. 여러 원자적 요소가 결합함으로써 철과 같은 또 다른 성질의 원자를 출현시켰으며, 지금의 문명도 그에 바탕으로 한 세계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원자의 구조는 수명의 한계가 있으며 별이나 우주의 탄생과 소멸도 이 작은 원자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수명을 결정짓는 것 또한 원자의 기본적인 구조에서 비롯된다. 오래된 원자의 구조는 하얀 물질을 내뿜으러 사멸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인류 또한 마찬가지다. 오래 살수록 하얀 머리가 나는 것은 물질의 기본 구조에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우주의 물질은 수명을 다한 상태로 붕괴와 폭발을 성질을 갖는다. 태양 또한 이에 기반된 집합체로 역시 오래된 하얀 물질을 내뿜으로 천천히 축소 사멸의 길을 걷는 것이다.   세상을 이루는 원자적 구조는 대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 원자의 성질과 운동에너지부터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원자는 동그라미의 성질을 갖지만 새로운 원자적 구조는 세모와 마름모로 그 문양이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집합체로서의 과거 원자의 문양은 다수의 원을 유지했지만, 세모와 마름모는 정의적 원소의 특징을 갖는다. 원자의 구성에서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과거 원자의 집합체로 철의 생성되었지만, 새로운 구조는 세모와 마름모의 정의가 된다는 것이다. 보다 깊숙이 보자면 끈 이론의 파동에서 변화가 생겨나며 정의가 되는 원자적 세모 구조로 돌변하는 것이다. 과거엔 여러 원자 배열표에 표기된 것같이 무거운 물질일수록 그 문양이 달랐지만, 새로운 구조는 정의적 차원물질로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새로운 물질의 구조로 과학문명이 발달한다면 중량적인 부분과 중력적인 부분, 그리고 에너지적인 부분을 제어할 수 있는 기본적 환경이 주어진다. 새로운 구조는 이러한 사항들에 대해서 쉽게 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부상 우주선 같은 새로운 기술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   이 상황은 상황이 돌변하면 언제라도 그 상황으로 돌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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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특별기획
  • "민은 가식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 여기는 초월영역의 사실을 알려주는 곳으로 앞으로 많은 것을 다룰 예정이다. 한가지 더 말한다면 가까운 미래 범은 너희들과 같은 세상에 있지 않는다. 지구의 자연은 범의 사냥에 의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지금의 영역은 초일류 신적인 영역으로 우주는 전장인 것이다.  지구 또한 그 전장적 환경인 것이다.   너희들은 인간이며 연약한 존재이다. 지금의 범의 위치는 죽었다 깨어나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이다.  그 급수의 차이는 상상초월하는 것으로 가까운 미래에는 같은 세계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치는 원한관계가 남으면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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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특별기획
  • 우주 탄생은 창조신(創造神)이며, 이 시대 <인물> 이다
  • 그 상황을 산하에 새겨 놓은 것이다. 그 손이 태어난다는 것을 전하고 있으며 많은 부분 그의 생활환경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미래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숙지하라는 선대 조상들의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또한 선대 조상들은 지구의 지형과 달의 문양까지 인위적으로 그렸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매우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전 우주의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언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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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특별기획
  • 수원(水原)의 기원
  • 우리가 흔히 수원을 말할 때 그 기원으로 삼한 시대의 모수국을 떠 올리곤 한다. 중국의 사서에  나오는, 마한 50여국 중의 하나인 모수국은 대체로 물이 많은 곳, 곧 물나라란 뜻으로 쓰인 것 이라고 한다. 지금의 지명인 수원도 1271년 수원도호부가 되면서 수원이라는 지명이 시작된다. 
    그만큼 이곳은 물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 어째서 물이 많은 곳이었던 것일까? 어째서 우리가 사는 수원을 물의 근원지로 지명을 지어졌을까? 그 의문점을 하나하나 풀어보도록 하자. '수원(水原)'은 지명에 나타나 있듯 물이 풍부한 곳이다. 역사 속의 지명 역시 이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삼한시대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모수국(牟水國), 삼국사기에는 매홀로 표기돼 있다. 한자음은 물골이다.

    통일신라시대인 경덕왕 16년(757년)에는 수성군(水城郡)으로 바뀌었으며 고려시대 초기인 태조 23년(940년)에는 수주(水州)로 승격된다. 또한 한남(漢南), 수성(隨城) 이라는 별호(別號)가 정해지기도 했다. 이후 1271년(원종 12년)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가 된다. 이 때 수원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했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수원부, 수원군, 수원부, 등으로 변화를 거듭하다가 1793년 정조에 의해 화성유수부(華城留守府)로 승격된다. 정조는 이듬해부터 화성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말기엔 쇠퇴기를 맞아 수원군(1895년·고종 32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그 이후 남양군·의왕시 흡수하면서 수원군으로 바뀌다 수원시의 지명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렇듯 수원의 지명은 예로부터 물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그렇다면 어째서 물과 관련된 지명이 많았던 것일까?

    수원의 지형은 중생대 중반 대보화강암이 지금의 수원에 관입해 넓은 분지를 만들게 된다.  이 대보화강암은 수원의 지하수 밑으로 관입해 수원의 지하수가 지표면으로 쉽게 노출되는 지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수원의 주산이라고 할 수 있는 광교산은 단단한 화강암에서 열과 압력에 의해 변형된 편마암들로 구성되어 지하수들이 수원분지로 흘러드는 주요한 역할을 해주게 된다.  이로 인해 수원은 작은 면적에도 불구하고 4개의 하천을 소유할 수 있었다. 수원의 중심을 흐르는 '수원천'을 비롯 서해 바다까지 흐르는 황구지천, 서호천, 원천천이 시내의 중심을 흐른다. 수원엔 저수지 또한 많다. 광교산엔 하광교소류지, 사방댐, 광교저수지, 파장저수지가 있고, 원천저수지, 신대저수지, 일왕저수지(만석거), 서호, 일월저수지 등이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사실로는 물의 도시라는 지명이 뭔가 부족한 면이 있다. 4대 하천과 여러 개의 저수지가 있다고 물의 도시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옛 지명의 모수국이나 200년 전 정조임금은 왜 지명을 수원이라고 지었을까?

    수원은 예부터 벼농사가 잘 되는 곳 중에 하나였다. 아니 알아서 잘 자라는 곳이라고 해야 맞을까?  이곳은 벼농사가 잘 되었던 지역 이였다. 벼농사가 잘되는 이유 중 하나가 물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하천 주변이 아니더라도 땅을 조금만 파면 지하수가 샘솟는 곳이 지금의 수원과 화성지역이다.  수원 지역은 5미터만 파면 지하수가 나오는 곳이 많다. 수원의 지면 위는 4개의 하천이 흐른다지만 수원의 지반 밑에는 무수한 지하수와 거대한 지하 호수까지 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이,  넓은 분지 지역인 지금의 수원이다.

    그래서인지 수원은 예부터 농사가 발달되어 있으며 물이 풍부한 그 이유로 인해 저수지 또한 많고 농촌진흥청이 이곳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권업모범장은 나중에 농촌진흥청이 되지만 이곳에 일제가 농사연구소를 만든 이유는 수원이 물 부족으로 인한 연구에 차질이 없는 지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정조 시대에도 그러한 사실을 알아서인지 당시 저수지 농법 등 벼농사 관련 연구가 활발했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재밌는 일화가 있다. 원래 몸이 민감한 부분이 있어서인지 지하수가 흐르는 수맥이 있는 곳 위에서 자면 잠이 잘 안 오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알아보면 거의 대부분 수맥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수원엔 지하수가 흐르는 곳이 정말 많은 것 같다. 또한 수원지역은 넓은 분지 지역이라 거대한 지하호수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의 영통에 있는 수령5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그러한 거대한 나무가 자라기 위해선 풍부한 물이 필요하다. 영통에 있는 그 느티나무의 뿌리는 아마도 지하수를 찾은 듯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건강하게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지하수가 풍부한 이유로 인해 수원의 지명은 물과 관련된 지명이 예부터 많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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