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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역사·전통
  • <지구> 목섬은 고흥 시산도(詩山島)의 본 이름이다
  • 신라금관은 목신(木神)을 의미하는 것이며, 모양을 본 뜬 것은 목섬이다. 그것이 시산도(詩山島)의 본 이름이다. 필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고흥에 위치하고 있으며 김(laver)과 낚시로 유명하다.  태어난 이후 줄 곧 수원에서 살아왔다.  
    • <이미지=고흥 시산도와 신라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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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역사·전통
  • 역사의 오류인 ‘아사달’과 ‘단군신화’
  • 날조의 역사는 그 한계점에 도달함으로서 지금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일수 있으나 그간 지식의 한계를 분명히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아사달이다. 아사달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아스티나)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선 맥으로는 부탄지역에서 태동했던 것이다. 아사달은 조선시대(대륙의 대부분 영역)에 있었던 변방의 도시였지 중심지는 아니었다. 조선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지구에서도 유구했다. 그 산하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하의 나라 중의 고구려는 별개였다.    무엇보다 지구는 주의 개념과 신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그 사실을 모르면 역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옛 적에 있었던 단군신화는 신과 여손과의 생활이다. 그로인해 지금의 인류가 살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인류는 태반이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과 여손들과의 생활로 지금의 인류로 발돋움했던 것이다. 그것이 단군신화의 본 내용이다.   <그림은 목섬(시산)의 풍경을 가리킨다. 신은 수원에서 내려갔다는 걸 표현한 작품이다>

    지구에 있는 수없이 많은 피라미드들은 신의 여손의 부친상을 당하면 묘장되는 풍습이었으며, 반도인 한반도에서는 신의 성지로 왕릉급으로 예우받았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신의 생활은 앞으로 인류의 길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신이 그 생활을 안 하면 지금의 인류는 앞으로 더 이상 인류로 살아갈 수 없다. 미래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인적인 길을 걸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좋지 않은 상황은 인간으로서도 고별을 해야 하는 위치에도 서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범세계와 월계간의 가교역할로서 충실해야 한다.>   지금으로서 인류는 대 변화를 맞이하게 되며 신계와 갈라서게 된다. 또한 월계의 환경에 적응해야 하며 그들의 질서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남은 유일한 길이다. 그 간 너희들의 역사는 권력을 쥐기 위한 사기였던 것이다. 실제 역사는 매우 달랐다. 또한 지금의 인류는 인간이 되기 위한 단계적 수순이라는 것을 반드시 숙지해야 한다. 인간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다. 지금은 완연한 인간이 아니다. 고유한 인간이 아니였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을 가늠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같은 추세라면 인류는 앞으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없다. 또한 그 생은 길지 않으며 노화는 중첩적인 상황인 것이다. 오래 산 경험이 없다는 것은 지금 인류의 한계로 지금 사는 이 시대의 인류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다. 인류의 길은 험난할 뿐만이 아니라 여러 넘사벽 적인 상황을 풀어야 해결될 수 있다. 그 중의 인강적 요소는 무시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여러 요소에서 파를 일궈야 하며 지구는 더이상 최적의 환경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이주를 강행해야 한다. 곧 그 세계가 펼쳐질 것이며 상상할 수 없는 행성이 목전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 <역사 스페셜 역사의 오류인 ‘아사달’과 ‘단군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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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역사·전통
  • 20만 년의 가락문명 속, 과거 논대(論大)가 있었다
  • 한반도에서의 문명은 처음이 아니다. 고도의 문명은 두 번 정도 지나갔다. 그 첫 번째가 조선(예수~정약용)으로 여러 우주를 돌아다닌 초월적 세력이었으며 두 번째로는 20만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가락문명이었다. 가락문명은 8만 년 전에 중앙집권식 왕권을 성립했으며 나라를 운영했다. 지구의 역사로 본다면 가락문명은 그 시기가 매우 빨랐다. 다른 곳은 원시적 모습으로 살던 시대 그들은 그들만의 독자적으로 문명을 일궈 나갔다. 한반도에서 그러한 모습들이 투영되는 일이 있는 건 그 시간적 잔상을 물질이 머금었기 때문이다. 두 문명의 고향적 토양은 지구였다.    <행차는 여러가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교육적 방식 또한 지금과는 달랐다. 전통을 중요시 했으며 근대식 교육을 고집했다. 당시에는 지금의 서울대농대 부지엔 논대가 있었다. 논대는 대학원 이상의 수준으로 여러 학문별 박사 이상의 급수였다. 지금과는 유사한 듯 다르다. 특정지역은 미래를 위한 대안도시를 운영했다. 수원지역은 당시 특수지역이었다. 외계적인 분야의 전문적인 손들을 길러내는 곳이기도 했다. 우주 진출에 성공한 가락문명은 이러한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한 우주 진출의 전진기지로서 남극을 할애할 줄 알았다. 그들은 한반도의 국력만으로 우주 이주까지 달성했던 것이다. 성공한 이유는 그들의 독특한 교육체계에 있었다. 그들은 손도 관리함으로써 그 손의 학문적 깊이 또한 가늠할 수 있게 했다. 그러한 이유가 작으면서도 고도의 문명을 달성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의 인류는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수만년에 걸쳐 우주 진출에 성공했다. 지구의 토박이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논대는 여러 학문적 고찰을 논하는 곳으로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소유한 자만 다닐 수 있었다. 또한 여러 학문을 전진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또 한 가지 다른 점은 논장각하 집무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논장각하는 지금의 국회와 대통령, 교수, 법관으로서 여러 가지 일을 담당하는 직책이었다.    지금의 수원화성은 동시대 살았던 조선과 가락문명의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한 건축물에 속한다. 그것은 그 건축물이 가지는 여러 상징적인 의미와 컨셉 그리고 앞으로 인류의 손으로서 지향하는 여러 학문적 지식들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은 토목공사가 아니다. 스케일이 거대한 예술적 건축물이라 평가할 수 있다. 
    • <수원 서울대 농대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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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역사·전통
  • 평강 채씨 가문 문장가들의 문집 가치 조명하는 학술대회 열린다
  • 초대 수원유수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을 배출한 평강 채씨 가문 문장가들의 문단 활동과 문집의 학술적‧문화재적 가치를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린다.
     
    수원화성박물관은 12월 1일 오후 2시 박물관 영상교육실에서 ‘번암 채제공 가문의 문집 간행과 가치’를 주제로 2023년 수원화성박물관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특별기획전 ‘평강 채씨 가문의 문장가들’과 연계해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평강 채씨 가문 대표 문장가들의 문집에 대한 가치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학술대회는 4개 주제 발표로 진행된다. ‘번암 채제공의 선대 가계와 정치활동’(이근호 충남대 교수)에서는 평강 채씨 가문의 가계와 정치활동을 살펴보고, ‘근기 남인 문단에서 번암가 문학의 위상’(윤재환 단국대 교수)에서 가문의 대표적인 문장가들의 문단활동과 그 위상을 조명한다.
     
    ‘채팽윤의 문집 이본 검토 : 목판본 「희암집」 「폐추」를 중심으로’(백승호 국민대 교수), ‘번암 채제공의 「번암집」 편찬 과정’(김문식 단국대 교수)을 주제로 한 발표가 이어진다.
     
    한상우 아주대 교수, 이국진 강원대 교수, 장유승 성균관대 교수, 김세영 수원화성박물관 학예연구사 등 각 분야 전문가가 토론에 참여한다.
     
    번암 채제공을 비롯해 평강 채씨 가문의 대표적인 문장가로는 채제공의 종고조부인 호주 채유후(蔡蔡後, 1599~1660)와 증조부인 희암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있다. 생전에 쓴 글을 모아 후손들이 문집을 간행했다.
     
    호주 채유후는 조선 후기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인조실록」, 「선조수정실록」 편찬을 책임졌고, 「효종실록」 편찬에 참여하는 등 문재(文才)가 뛰어났다. 그의 문집인 「호주집」 소지(小識)를 영조가 직접 짓고, 방손(傍孫)인 승지 채제공(蔡濟恭)이 썼다. 채팽윤의 발문(跋文)도 있다.
     
    채제공의 종조부이자 스승인 희암 채팽윤은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다. 숙종이 그의 시재(試才)를 크게 인정해 어사주(御使酒)뿐 아니라 호피(虎皮)와 같은 하사품을 내리기도 했다. 숙종에게 올린 13편의 응제시문을 모은 ‘응제시첩’이 남아있다. 채팽윤의 문집인 「희암집」 간행을 번암 채제공이 주도했다.
     
    초대 수원 유수를 역임한 번암 채제공은 정조가 직접 어정범례를 내려 「번암집」 편차를 정해줬다. 학서 류이좌가 번암집 간행을 주도해 안동 봉정사 간소(刊所)에서 간행했다.
     
    평강 채씨 가문의 문장가들을 만날 수 있는 특별기획전 ‘평강 채씨 가문의 문장가들’은 내년 1월 14일까지 열린다. 평강 채씨 가문에서 배출한 문장가들의 문학적 자질을 볼 수 있는 유물과 보물로 지정된 채제공 초상화 유지 초본, 평강 채씨 가문의 생활유물, 족보 등 자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유물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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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역사·전통
  • 수원 만석공원, 그리고 신시(神市)
  • 수원의 만석공원(만석거;萬石渠)은 오래전 최초로 벼농사를 지었으며 특히 하늘농사법에 대해서 전하고 있다. 수원의 사직단 (社稷壇)은 하늘농사와 관련이 있으며 , 백제금동대향로(百濟 金銅大香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곳에 쓰였다. 특히 수원은 영원(永遠 ; Forever)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범미시티(송죽동)는 도시국가로 신시(神市)라 불리기도 했다. ]   한반도의 지명은 신과 관련이 많으며 신의 성지(유불선)로서 조선(예수;정약용)이 한반도를 관리했던 것이다. 한반도를 그 뿌리를 둔 삼한은 대륙에 있었으며, 기원전후로 중국과의 경쟁에 밀려 한반도로 피난온 것이다. 15,000년 전에도 도시국가(신시) 형태로 유지했으며 그것을 모티브해 부족국가를 세웠다. 중국 삼국지의 시대적 배경은 12,000년 전으로 한 때 삼한의 세력에 밀려 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분포하였으나 고영토 수복전쟁으로 지금의 중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수원의 만석공원 지역은 옛 적부터 문명이 있었으며 우주선을 타고 왕래했던 지역으로, 이것을 보고 신이 강림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의 신시 배달은 인곳인 신시에서 우주선으로 왕래 했음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역사는 지구의 역사를 넘어서며, 이 우주는 신의 물 한 모금으로 창조된 우주이다. 그것이 신의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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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역사·전통
  • 조선에 있어 한반도는 신들의 고향을 뜻한다
  • 조선(예수~정약용)의 호칭에 있어 한반도는 수만에 달하는 신들의 고향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고향인 지구라는 행성을 과거의 그것과 유사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지구의 자연이 자연스레 생긴 지형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전혀 다르다. 과거 그들에 있어 태초에 있었던 지구를 그리워해 유사하게 그렸던 것이다. 갓 문화 또한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들의 태초에 있었던 고향적 도시는 지금의 시산도라는 섬의 앞바다에 있었다. 그것이 잠시나마 투영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물질은 과거 영원에 가까운 오래된 우주적 물질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행적과 모습들이 비춰지는 것이다. 그 시대와 맞물러 그들은 그들의 태초의 고향적인 곳으로 한반도를 그렸던 것이었다.    지금의 한반도인들은 신들이 아니다. 다만, 그들이 신봉한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애찬 한 것이다. 앞으로 그러한 지식은 태동인류에게는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들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앞으로도 월계라는 세계에서도 그 지식은 매우 소중히 다뤄줘야 한다. 월계라는 곳은 자연계에 해당된다. 그 신 또한 네발짐승적 모습을 띈 신성한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 산하 세력은 초월적 문명을 이룬 세계이기도 하다. 앞으로 인류는 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빠르면 이번달부터 그들은 대대적으로 지구에 상륙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이미 지구권에 와있는 상태이다. 그들과의 조우는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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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역사·전통
  • 부여계의 한 일파인 부탄
  • 한국인의 역사를 보면 부여라는 나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부족사회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기원전 300년 경으로 지금의 부탄지역인 북부지역에서 역사가 태동했음을 가리키고 있다. 한반도인들의 이동경로를 보면 부여계 일파에서 여러 세력으로 갈라졌음을 알 수 있으며, 그중 백제, 고구려, 신라가 여러 부족사회를 통합함으로써 연맹체로 발달했다. 세 나라는 대륙에 있었으며 지금의 아시아권 북방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삼국사기는 대륙에 있던 그 토양을 기반으로 새긴 역사서이다. 지금의 한반도는 과거서부터 조선이였으며, 조선의 역사는 지구의 역사를 넘어선다. 뿐만 아니라 대륙의 전체를 관리하고 있었다. 다만 세 나라의 멸망시기 기원후 8세기 전반으로 삼국은 그 역사의 종지부를 찍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가장 강력한 중국 세력에  밀렸던 것이다. 일부는 한반도와 일본지역으로 피난을 했다.    피난온 한반도는 신의 성지로서 국가를 인정받았던 것은 조선과, 가락(가야연맹체)국(성역) 뿐이었다. 그래서 종교와 관련된 유산과 유물이 많았던 것이다. 지금의 한반도인들은 조선의 역사를 별개의 영역으로 놓아야 한다. 민족 자체도 다를 뿐만 아니라 걸었던 역사로 다르다. 조선(예수~정약용(수원화성))은 고도의 문명을 창궐한 초월적 집단이다. 특히 주 단위의 윗 상의 국가였다. 명나라가 망하고 그 체계가 몰락한 것이다. 이후 조선의 철수와 함께 한반도로 집결시켰다. 무엇보다 한반도는 신의 성지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한반도의 지명으로 남겼던 것이다.    특히 여러 역사서들은 예언적 사실들을 남겨놓은 것들이 많았다.   부탄의 생활과 문화는 한국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뿌리적 기반의 문화가 주를 이룬다. 다만 지금의 한반도인들은 부여계 북방민족으로 여러 남방계 민족과 혼혈했다. 부탄은 한 일파이지만 지금의 한국인들은 적어도 128만파에 이를 정도로 그 숫자가 많다.    여러 사실을 종합해 보면 대한제국(범;고종황제) 또한 별개이며, 일제식민지를 거쳐 6.25 전쟁 이전 대한민국의 역사가 전부라(인천상륙작전 맥아더장군;범) 할 수 있다. 그 이후 이념이란 이유의 휴전상황이 두 지역이 불법점유에 불법이 성립되는 것을 정의하고 있다.    지금의 한반도는 범미킴동(송죽동;신시)과 내셔널이 공존하는 영역으로 역사로 보기 힘들다.  불법점유에 가장 큰 이유는 한반도는 태고부터 신(태초의신)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1신. 1신(한반도) 2주(조선, 그리스) 3국(총24국) 운영체계였다. 조선은 윗상의 국가였다. 관할지역은 유럽지역을 제외한 과거 대륙의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으며, 그 아래가 여러 산하의 나라들이 운영되고 있었다.   내용은 수원 칠보산의 보물을 매개체로 해석한 것으로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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